결혼정보회사 상담을 받고 와서 느낀 묘한 기분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받고 와서 느낀 묘한 기분

서류로 나를 증명한다는 것의 무게

친구가 하도 한 번 가보라고 성화여서 강남에 있는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예약했다. 사실 처음에는 좀 망설여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결정사 가서 상담받고 충격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막상 방문하니까 분위기가 생각보다 사무적이었다. 무슨 입시 상담실 같기도 하고, 대출 상담하러 은행에 온 기분도 들었다. 매니저님이 앉자마자 물어보는 게 내 학력, 연봉, 자산 규모 같은 것들이었다. 대화가 아니라 거의 서류 검토 수준이었다. 내 삶이 이력서 한 장에 다 요약되는 기분이라 좀 씁쓸하기도 했다. 특히 등급표라는 걸 은연중에 의식하게 되는데, 상담 내내 내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점수가 매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울 수 없었다.

2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의 가입비

상담 중에 가장 놀랐던 건 역시 가입비였다. 등급이나 매칭 횟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2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는 기본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더 비싼 프리미엄 서비스도 있는데, 듣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돈을 내면 정말 결혼이라는 결과가 보장되는 건가 싶었다. 매니저님은 성혼 중심이라며 자신 있게 말했지만, 사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돈 낸다고 딱딱 맞춰지는 건 아니지 않나. 가입비를 결제하는 순간부터는 뭔가 ‘결혼’이 아니라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3일 연휴에도 상담을 연다던데, 쉬는 날까지 이런 상담이 몰린다는 게 참 묘했다. 다들 얼마나 다급하고 간절한 건지, 아니면 그냥 조건 좋은 사람을 찾고 싶은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자기 객관화라는 이름의 쓴소리

상담 과정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게 ‘자기 객관화’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시간인데, 이게 꽤나 아프다. 평소에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좁은 상담실에서 전문가의 입을 통해 나오니까 전혀 다르게 들렸다. 눈이 너무 높다거나, 성격적으로 보완할 점이 있다는 지적을 들을 때는 솔직히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해서 더 화가 났다. 연예인들도 여기서 상담받고 좌절한다던데, 나라고 별수 있나 싶었다. 대화 기술이 부족해서 소개팅에서 늘 고전하던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서는 그런 소통 방식까지 다 피드백을 해준다고 하더라. 돈을 내면 나라는 사람의 단점까지 돈 주고 고쳐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참 복잡한 마음이었다.

AI 메기보다 무서운 현실

요즘은 결정사에서도 AI 매칭 시스템을 쓴다고 한다. 예능에서 보던 것처럼 데이터로 완벽한 배필을 찾아준다는 건데, 이게 진짜 사람의 인연을 맺어주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기계가 골라준 사람이랑 만나서 밥 한 끼 먹고, 커피 마시고, 잘 맞으면 결혼하고. 물론 편하긴 하겠지만, 뭔가 감정의 비약 같은 게 생략되는 기분이다. 내가 만약 50억 자산이 있다고 해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그게 전부가 될 수 있을까? 결정사에서는 돈이 깡패라고들 하지만, 막상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았을 때 통장 잔고가 대화를 대신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과연 돈 내고 들어간 이 시스템 안에서 진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서류상의 조건이 맞는 사람과 쇼윈도 같은 만남을 갖게 될지 여전히 확신이 없다.

일단 한 번 더 생각해보겠다는 결론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길거리에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 중에서 결정사를 통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굳이 이런 시스템을 찾아가서 스스로의 가치를 점수 매기고 있을까. 가입을 할지 말지는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매니저님이 준 팸플릿을 가방에 구겨 넣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괜히 좀 우울해졌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이렇게까지 전략적이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당장 가입하기에는 뭔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너무 현실을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한 번 더 내 일상을 잘 살아가면서 고민해보려고 한다. 확실히 결정사는 한 번 다녀오면 생각이 많아지는 곳인 건 분명하다.

댓글 2
  • 서류를 계속 보니까, 마치 제 자신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어요. 좀 힘들었지만 중요한 깨달음 같기도 합니다.

  • 서류를 통해 자신을 규정짓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할 때, 제 삶의 가치를 숫자로 평가받는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