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 더미를 보며 느꼈던 묘한 기분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받으러 가기 전까지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내 주변 친구들 중에는 이런 곳을 이용하는 걸 굳이 숨기거나, 혹은 아예 ‘그런 곳까지 가야 하냐’며 비웃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어가고, 회사-집만 반복하는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다. 결국 강남 어디쯤에 있는 한 업체의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막상 앉아서 상담사가 내미는 서류에 학력, 연봉, 부모님 재산 상태까지 적어 내려가려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인생을 누군가에게 점수 매겨달라고 제출하는 기분이었으니까.
배우자 지수와 등급이라는 숫자의 벽
상담사는 꽤나 전문적인 말투로 ‘배우자 지수’라는 걸 언급했다. 뉴스에서 삼성전자 직원들 점수가 올랐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남 일인 줄 알았는데, 내 앞에 앉은 상담사가 내 직업과 연봉을 보고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 정도면 상위권에 속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영 불편했다. 가입비는 대략 300만 원 정도였고, 몇 번의 만남을 보장해준다고 했다. 사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정말 이런 시스템 속에서 ‘상품’처럼 평가받으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건가 싶은 회의감이 더 컸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등급이라는 게 과연 내 인격이나 가치관을 대변해줄 수 있을까. 막상 가입하고 나면 그 점수 때문에 더 피곤한 사람을 만날까 봐 걱정부터 앞섰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소개팅의 피로감
결국 큰맘 먹고 가입을 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소개팅이 잡히기 시작하니까 이게 연애를 하는 건지, 아니면 업무 미팅을 하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상대방도 나를 ‘결정사’라는 필터를 거쳐서 만난 거라 그런지, 첫 만남부터 대화의 궤도가 좀 달랐다. 서로의 취향이나 성격보다는 연봉, 거주지, 부모님 노후 준비 상황 같은 현실적인 정보들이 대화의 1순위가 됐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첫 만남 1시간 내내 본인의 자산 관리 계획을 설명하더라. 나도 사람이라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커피 한 잔 마시며 웃고 떠드는 재미는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성혼 사례비와 기대치 사이의 괴리
그곳에서 결혼까지 이어지면 따로 성혼 사례비를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비용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어서, 나중에는 ‘이걸 굳이 내면서까지 결혼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전문적으로 필터링 된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시간을 아껴주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 때가 있었다. 만남이 어긋날 때마다 ‘내 등급이 낮아서 그런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너무 따지는 것 같아 짜증이 치밀 때도 있었다. 결혼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는 건 이 나이에는 정말 불가능한 건지 고민이 깊어졌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마음
지금도 가끔 퇴근길에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그때 낸 가입비는 과연 결혼을 위한 수업료였을까, 아니면 그냥 내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인 처방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그 시스템 안에서 방황 중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조건은 번듯하지만, 마음이 확 열리는 경우는 드물다. 기독교 결정사든 일반 노블레스 업체든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겠다. 누가 옆에서 ‘결정사 가면 금방 결혼해’라고 말해도, 나는 그저 웃어넘길 뿐이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그 묘한 현타와 피로감을 절대 알 수 없을 테니까. 오늘도 스마트폰 앱으로 다음 주 소개팅 일정을 확인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텅 빈 것 같다.
가입비 때문에 그런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의 진심을 보기 힘들어졌다는 걸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