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준비하다가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서류 준비하다가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서류 뭉치를 뒤적거리다 든 생각

요즘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서류를 떼러 다닌다.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것들이다. 예전에는 이런 서류를 뗄 일이 거의 없었는데, 막상 내 손으로 내 신상을 증명하는 종이들을 뽑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인터넷으로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 들어가서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하고, 내가 ‘초혼’이라는 단어 옆에 체크를 하는 과정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냥 절차일 뿐인데도 화면 속 글자가 묘하게 묵직하게 다가오더라. 결혼 준비라는 게 사실 예쁜 드레스 고르고 식장 정하는 화려한 과정인 줄만 알았는데, 실상은 구청 서류 떼고 대출 상담받고 가전제품 스펙 비교하는 지루한 행정 업무의 연속이었다.

엉뚱한 검색어와 마주한 밤

며칠 전에는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득 ‘초혼’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쳐봤다. 뉴스 기사들을 훑어보다 보니 김소월 시인의 ‘초혼’에 대한 전시 소식부터 홍암 나철 선생의 초혼비 이야기까지 뜨더라. 내가 지금 준비하는 이 ‘초혼’과 시에서의 그 간절한 부름이 왠지 모르게 대비되어서 멍하니 화면을 내려다봤다. 사람들은 결혼을 인생의 큰 결실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나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이게 나중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잘 모르겠다. 재혼 부부들이 시험관 시술 기록 때문에 고민하는 글도 보였다. 누군가는 지나간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그 흔적 때문에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게 참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 싶었다.

예식장 견적과 현실의 괴리

강남 쪽에 있는 예식장 몇 곳을 둘러봤는데, 대관료만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 단위까지 가더라. 식대까지 합치면 꽤 큰돈이 나간다. 처음에는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라며 예산 범위를 넓게 잡았는데, 막상 상담 테이블에 앉아서 숫자를 적어 내려가니 현실 감각이 확 돌아왔다. 플래너 분이 이것저것 옵션을 추가하라고 권하는데, 사실 그게 정말 필요한 건지 아니면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건지 헷갈렸다. 스튜디오 촬영도 몇 군데 비교해봤는데,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가 기본인 곳이 많았다. 결국 나는 그냥 심플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남들 다 하는 스냅이나 DVD 같은 것도 솔직히 나중에 내가 얼마나 볼까 싶어서 최소한으로 줄였다.

사람들의 시선과 정해진 답

주변 친구들은 벌써 결혼한 애들도 있고, 나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애들도 있다. 카카오톡으로 소개팅을 받아서 결혼까지 가는 경우도 종종 본다. 예전에는 소개팅이라고 하면 왠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직장인들에게는 이게 가장 효율적인 만남의 방식이라는 걸 안다. 결혼이라는 게 사랑의 결실이라는 말도 맞지만, 어쩌면 사회적으로 서로의 조건을 검증하고 동의하는 아주 거대한 계약 같은 느낌도 든다. 상견례 자리에서도 그랬다. 부모님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식사를 하시는 동안, 우리는 그 분위기를 맞추느라 적당히 웃고 적당히 리액션했다. 그 어색한 공기를 잊을 수가 없다.

끝나지 않는 준비와 막연함

아직 신혼집 정리도 다 안 끝났다. 전세 대출 금리가 생각보다 높아서 매달 나갈 이자를 계산해보니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결혼 준비가 재밌어야 한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기만 한지 모르겠다. 가끔은 그냥 다 던져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제는 가전제품 보러 갔다가 냉장고 가격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한 예산보다 훨씬 비싸서 한참을 서성이다 그냥 나왔다. 굳이 지금 당장 사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정답이 없는 문제인데 자꾸 정답을 찾으려고 하니까 더 힘든 것 같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는 건데, 너무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결혼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옭아매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시간은 가고 예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이 마음이 언제쯤 정리가 될지 모르겠다.

댓글 3
  • 초혼이라는 단어 옆에 체크하는 과정이 낯설게 느껴지네요. 가족 기록이 이렇게 중요할 줄은 몰랐어요.

  • 김소월 시인의 '초혼'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결혼 준비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 상견례 때 부모님들께서 식사하셨을 때의 긴장감, 정말 공감해요. 특히 예전에는 좀 더 격식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훨씬 편하게 대화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