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가 먼저였던 첫 만남
작년 가을쯤이었나, 30대 중반을 훌쩍 넘기고 나니 주변에서 툭툭 던지는 말들이 꽤나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선 자리도 몇 번 나가봤지만,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결국 참다못해 강남역 근처에 있는 결혼정보회사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듀오 같은 곳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상담 매니저님이 꺼낸 건 내 이상형에 대한 질문지가 아니라, 내 학벌이랑 직장, 그리고 부모님 직업까지 꼼꼼히 적힌 서류였다. 여기서부터 이미 내가 꿈꾸던 낭만적인 만남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직감했다. 가입비로 거의 300만 원 가까운 돈을 결제했는데, 솔직히 그 돈이 아깝지 않을까 싶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몇 번이나 영수증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낯선 사람과 나누는 건조한 대화
첫 번째 소개팅은 가입하고 2주 정도 지나서 잡혔다. 강남역 11번 출구 근처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는데, 상대방도 나처럼 소개를 받아 나온 눈치였다. 우린 서로의 취미가 무엇인지, 주말엔 보통 뭘 하는지 같은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근데 그 대화 끝엔 항상 ‘결혼하면 집은 어디쯤 생각하시나요?’ 혹은 ‘맞벌이는 필수로 생각하시나요?’ 같은 질문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사람을 보고 호감을 느끼기 전에 조건부터 맞춰보고 있다는 사실이 좀 씁쓸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효율적이긴 했지만, 그게 사람 사이의 따뜻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사랑의 정의를 고민하게 된 밤
집에 와서 뉴스 기사를 좀 찾아봤다. 중매결혼이랑 연애결혼의 행복도가 사실상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 친밀감이니 열정이니 헌신이니 하는 단어들을 보는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과정이 과연 나중에 저런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카페에서 만난 그분은 예의도 바르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서 문자를 주고받을 때 느껴지는 건 설렘보다는 ‘업무 협의’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과연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인연이 자연스러운 연애보다 더 깊어질 수 있을까? 주변 친구들은 결정사에서 만난 사람도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그게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멈춰버린 횟수와 남겨진 불안함
어느덧 가입한 지 6개월이 지났고, 만남 횟수도 꽤 소진했다. 가끔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어 밤잠을 설칠 때도 있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주는 압박감 때문에 등 떠밀려 시작한 건데, 지금은 그 비용만큼이나 소중한 시간까지 쏟아붓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 매니저님이 추천해준 분들은 하나같이 스펙이 훌륭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 앉으면 내가 사람을 보는 건지, 아니면 서류상의 점수를 확인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런 방식의 만남이 결국 결혼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나중에 우리 관계가 흔들릴 때 ‘조건’ 때문에 만났다는 사실이 더 큰 짐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결국은 사람인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서
얼마 전 고모할머니를 뵈러 갔다가 또 결혼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중매로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았지 않느냐며, 요즘 애들은 눈이 너무 높아서 문제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땐 나랑 시대가 달랐던 게 아닐까. 지금은 사람 대 사람으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기준이 훨씬 더 중요해진 것 같은데, 정작 나는 결혼정보회사라는 시스템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도 상담 매니저님에게서 다음 만남 일정을 잡자고 연락이 왔다. 예,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텅 빈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다음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잠시 멈추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나은 건지 도통 답이 나오질 않는다.
서류에 나온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방식이, 결국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마음을 알아가는 것보다 조건부터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일 때도 있네요.
서류를 보고 나서도 마음이 딱 그랬어요. 조건에 맞춰서 만나는 게 결국 씁쓸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류 때문에 겪는 불편함이 느껴지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대화는 정말 피하려고 노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