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퍼 이모님 봉투에 현금을 넣으면서 느꼈던 묘한 피로감

헬퍼 이모님 봉투에 현금을 넣으면서 느꼈던 묘한 피로감

플래너를 믿고 시작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엔 남이 되는 시스템

처음 결혼 준비를 마음먹고 웨딩플래너추천 글들을 샅샅이 뒤질 때만 해도, 대형 업체의 유명 플래너를 끼고 진행하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편안할 줄 알았다. 특히 결혼식이나 촬영 날에는 플래너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플래너는 모바일 화면 너머로 스케줄을 예약하고 체크리스트를 던져주는 조율자일 뿐, 정작 가장 땀을 많이 흘리고 긴장되는 현장에서 나와 나란히 서 있는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웨딩도우미였다. 흔히 ‘헬퍼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이 도우미분의 손길 하나에 그날의 웨딩화보 퀄리티와 나의 기분이 통째로 좌우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플래너 선정에만 목을 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현장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소통 문제나 어색함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겨졌다.

청담동 메이크업 샵에서 마주한 이른 아침의 긴 대기 시간

촬영 날 일정은 청담동에 있는 제니하우스 메이크업 샵에서 시작됐다. 약속 시간인 오전 6시 반에 맞춰 졸린 눈을 비비며 도착했지만, 스튜디오로 출발하기 전까지 거의 3시간 가까이 대기실과 메이크업 의자를 오가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머리에 헤어롤을 감고 멍하니 앉아 있는 동안, 드레스 샵인 라포레에서 파견된 웨딩도우미 분이 도착했다. 거대한 흰색 천 가방에 웨딩드레스 몇 벌과 티아라, 온갖 귀걸이가 담긴 가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신 모습이었다. 첫 대면의 순간은 묘하게 긴장되고 어색했다. 이모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호칭부터 망설여졌고,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좁은 대기실 안에서 감도는 침묵이 은근히 숨이 막혔다. 플래너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른 아침이라 연락하기도 미안했고 메이크업 샵 대기는 흔한 일이라며 미리 카톡으로 귀띔을 받았던 터라 입을 꾹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사동 스튜디오 촬영 현장에서 느꼈던 웨딩도우미 추가 비용의 압박

메이크업을 간신히 마치고 신사동에 있는 지하 스튜디오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계약 단계에서 웨딩촬영비용 외에 헬퍼비로 250,000원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안내는 진작 받았다.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 드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촬영 시간이 당초 계획했던 4시간을 훌쩍 넘겨 5시간이 넘어가면서 발생했다. 스튜디오 작가님의 열정이 넘쳐서인지 촬영이 길어지자, 헬퍼 이모님이 내 드레스 자락을 정리해주며 넌지시 “시간이 초과되면 시간당 5만 원씩 추가금이 붙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핑 돌았다. 우리가 일부러 늦장 부린 것도 아니고, 작가님이 더 찍어주겠다는데 왜 우리가 이모님 추가 수당을 고스란히 현금으로 더 드려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불쑥 솟았다. 하지만 촬영은 아직 한참 남아있었고, 드레스 핏을 꽉 조여주는 이모님의 손끝에 내 사진의 성패가 달려있었기에 얼굴을 붉힐 수가 없었다. 알겠노라며 억지웃음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패키지 토탈샵과 플래너 개별 동행 사이에서 고민했던 흔적들

사실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 추천해준 스드메 패키지 토탈샵을 이용할지 아니면 플래너를 통한 개별 진행을 할지 꽤 오래 고민했었다. 토탈샵은 헬퍼 비용이나 메이크업, 드레스가 한곳에서 해결되어 비교적 추가금 분쟁이 적고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개별 동행 플래너를 끼고 진행하면 나만의 취향을 더 꼼꼼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이 길을 택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겪어보니 플래너는 그저 카톡으로 “이모님 잘 챙겨드리라”는 뻔한 조언만 건넬 뿐이었다. 굳이 비싼 수수료를 내가며 플래너를 낀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동행 플래너라고 해도 결국 현장에서 나와 이모님 사이의 묘한 돈 관계나 감정 싸움까지 중재해주지는 않았다.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고 신경 쓸 일은 배로 늘어난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현금 봉투를 건네며 밀려온 피로와 찝찝함

모든 촬영이 끝나고 밤이 되어서야 땀 범벅이 된 채로 스튜디오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모님은 드레스들을 다시 차곡차곡 정리해 가방에 넣고 계셨고, 나는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둔 하얀 봉투를 꺼냈다. 기본 수당에 추가금까지 합쳐 총 300,000원의 현금을 봉투에 담아 건넸다. 이모님은 고생했다며 웃으며 받아 가셨지만, 카드로 결제할 수도 없고 현금영수증도 안 되는 이 낡은 지불 방식에 대해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는 명목 하에, 당연하다는 듯 현금 봉투가 오가고 룰이 명확하지 않은 추가금이 붙는 이 바닥의 룰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며칠 뒤 도착한 웨딩앨범 속 내 모습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스튜디오의 먼지 냄새와 현금 봉투를 건넬 때의 그 서늘했던 손길이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직도 이 결혼 준비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호구가 되었던 건지 여전히 헷갈리기만 한다.

댓글 1
  •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드레스 받으면서 웨딩도우미 언니가 짐 옮기는 것만 봐도 너무 힘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