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검색으로 대강 알아보다가 머리가 아파진 순간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머리 아팠던 게 가전제품 고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인터넷 쇼핑몰 몇 군데 뒤져보고 대충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장바구니에 담으면 끝날 줄 알았다. 요즘 워낙 삼성 비스포크나 LG 오브제컬렉션이나 예쁘게 잘 나오니까 냉장고랑 세탁기 정도만 맞추면 되겠거니 싶었던 거다. 그런데 조금만 검색해 봐도 모델명이 한 끗 차이로 다르고, 유통 채널마다 들어가는 부품이나 기능이 미세하게 차이 난다는 글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불안해졌다. 특히 신혼냉장고는 용량도 용량인데 4도어인지 3도어인지, 푸드쇼케이스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가격이 몇십만 원씩 널뛰기를 하니까 슬슬 머리가 아파왔다. 대충 예산을 800만 원 안쪽으로 잡고 시작했는데, 그냥 인터넷 화면만 보고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너무 명확했다.
비대면 견적이라는 편리한 유혹에 빠져서 보낸 며칠
대면으로 매장 여러 군데 돌아다닐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요즘 유행한다는 삼성 비대면 견적을 먼저 신청해 봤다. 인터넷 카페나 오픈채팅방 같은 데서 견적 요청 글을 올리면 전국의 대리점 직원들이 톡이나 문자로 견적을 보내주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굳이 매장에 안 가도 되니까 정말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며칠 해보니까 더 스트레스였다. 어디는 상조 결합을 해야 싸다고 하고, 어디는 특정 카드를 발급받아서 매달 얼마 이상 써야 그 가격이 나온다고 조건을 주렁주렁 달아놨다. 어떤 곳은 삼성 올인원 세탁기랑 냉장고를 같이 묶으면 할인이 더 들어간다고 하고, 다른 데는 또 사은품으로 태블릿을 주겠다고 제안하니까 나중에는 내가 진짜 기기값을 얼마에 사는 건지 계산이 아예 불가능해졌다. 엑셀 파일까지 켜놓고 받아본 견적들을 정리해 봤는데도 숫자가 제각각이라 점점 지쳐만 갔다.
결국 주말에 대구까지 직접 차를 몰고 내려가게 된 이유
인터넷으로 실랑이하는 데 지쳐갈 때쯤, 아는 지인이 7월 웨딩 박람회 기간에 오프라인 매장에 직접 가보는 게 사은품이나 실질 체감가 면에서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마침 롯데하이마트 대구범어네거리점에서 큰 규모로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가전 견적 받으러 가는 게 맞나 싶었지만, 마침 주말에 지방 내려갈 일도 있었고 인터넷 비대면 견적에 질려버린 참이라 그냥 직접 매장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근처에 도착했을 때 주말이라 차가 엄청 막혀서 주차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매장 안은 결혼 준비하는 예비부부들로 가득 차 있어서 북적거렸고, 왠지 모를 묘한 열기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세탁기와 냉장고 모델명을 두고 벌어진 매장 안에서의 혼란
직원 한 분과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가 봐둔 모델들을 하나씩 불러주며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했다. 우리는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와 세탁·건조기가 합쳐진 삼성 올인원 세탁기를 중심으로 견적을 짰다. 직원은 이 모델의 세부 기능과 모터 보증 기간을 설명해 줬는데, 막상 설명을 듣다 보니 우리가 알아간 모델보다 한 단계 상위 모델이 더 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옆 테이블에서 LG 오브제컬렉션 견적을 내고 있는 다른 커플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데, 그쪽 사은품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해서 마음이 계속 흔들렸다. 상담은 3시간 넘게 이어졌고, 나중에는 귓가에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직원이 설명하는 옵션들이 머릿속에서 다 섞여버렸다. 냉장고 도어 재질을 새틴 유리로 할지 코타 메탈로 할지 결정하는 그 사소한 순간에도 결정장애가 와서 아내와 매장 구석에서 조용히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할인과 캐시백의 복잡한 굴레에서 받아 든 최종 계산서
결국 이런저런 조율 끝에 최종 견적서를 받아 들었다. 처음 직원이 보여준 원래 출고가 기준 금액은 거의 1100만 원에 육박했는데, 무슨 제휴 카드 신규 발급 조건에, 상조 가입 빼고 순수 가전 할인만 넣어서 체감가를 780만 원대까지 낮췄다고 설명했다. 분명히 싸게 산 것 같긴 한데, 이 카드 결제일 할인과 3개월 뒤에 들어온다는 캐시백, 그리고 엘포인트 적립 같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서 머리가 복잡했다. 나중에 카드 실적을 못 채우거나 캐시백이 제대로 안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살짝 들었다. 사은품으로 냄비 세트랑 소형 가전 몇 개를 더 얹어준다고 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솔직히 그 물건들이 우리 신혼집에 진짜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가전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찝찝함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숫자와 모델명에 시달리느라 진이 다 빠진 탓이었다. 계약서 봉투를 조수석 서랍에 쑤셔 넣으면서도 ‘진짜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 달에 삼성 페스티벌 같은 대형 할인 행사가 또 열리면 우리가 오늘 계약한 가격보다 더 싸게 풀리는 건 아닐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발품을 더 팔았으면 사은품을 태블릿으로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닌지 하는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가전을 졸업했다는 후련함보다는 뭔지 모를 빚을 지고 온 것 같은 무거운 기분만 가득한 주말이었다. 이미 계약금은 치렀으니 그냥 잊어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지만,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가전 카페를 들락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견적 글을 훔쳐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