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다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다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예기치 않게 멈춰버린 일상

결혼 생활이 십 년을 넘어가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배우자와 사별하게 되었다. 장례식장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갈 때는 슬픔을 체감할 겨를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 소란스러움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문제는 모든 조문객이 떠나고 집 안의 가구들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옆을 돌아보는 버릇이 한동안 계속됐다. 빈자리를 확인하고 나면 그제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처음 몇 달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큰 용기였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웃고 떠드는 커플들을 보면 괜히 등을 돌리게 되곤 했다. 슬픔의 유효기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조금씩 나를 ‘이전의 나’로 되돌려 놓으려 애썼다. 그게 참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성급하게 느껴졌다.

억지로 시작해 본 대전에서의 저녁

지인의 권유로 대전에 있는 작은 모임에 나갔던 건 순전히 고립감 때문이었다. 굳이 연애나 결혼을 다시 생각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배우자가 없는 상태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시간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을 뿐이다. 당시 참가비로 3만 원 정도를 냈던 것 같은데, 비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과 섞여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필요했다. 카페에서 진행된 그 모임은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대구에서 왔다는 분도 있었고 서울에서 직장 때문에 내려왔다는 사람도 보였다. 누군가는 소개팅 앱 순위를 언급하며 요즘 만남이 얼마나 가벼운지 투덜댔다. 나는 그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커피만 홀짝였다. 누군가 나에게 ‘어쩌다 혼자가 되셨냐’고 묻는 순간, 식은땀이 났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질까 봐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느꼈던 공허함은 생각보다 컸다. 사람 속에 있었는데도 왜 더 외로워진 건지 알 수 없었다.

결정사나 앱보다는 차라리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주변에서는 결혼정보회사 같은 곳을 알아보라고 은근히 추천하기도 했다. 가입비가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는 말을 듣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안정적인 조건이나 서류상의 스펙을 맞추기 위함은 아니었으니까. 40대 소개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대부분이 자신의 조건을 내세우는 글들뿐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보다는 결격 사유를 따지고 검증하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건조하게 다가왔다. 차라리 그냥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사람과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는 게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렇게 쉽게 인연이 나타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스템화된 만남은 왠지 내 마음의 정리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을 안고 살다 보면 밤이 길어진다. TV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 모임에서의 불편한 시선

명절이 다가오면 가족 모임이 가장 큰 숙제였다. 시댁 식구들과는 사별 이후에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지만, 만나면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특히 재혼한 친척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나를 걱정하는 척하며 던지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이제는 털고 새로 시작해야지”라는 말은 참 쉬운데, 그 속도는 사람마다 제각각인 법이다. 무당이 된 가족이 있거나 하는 복잡한 종교적 갈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가족 안에서도 사별에 대한 이해도는 극명하게 갈렸다. 누구는 너무 빨리 잊으라고 하고, 누구는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몰라 그저 웃기만 했다. 가족 모임은 위로의 장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사회의 정상적인 범주로 돌아왔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 같았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감정의 매듭

결국 나는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소극적이다. 소개팅 앱을 깔았다가도 며칠 지나지 않아 삭제하기를 반복한다.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를 다시 설명하고, 그 사람의 일상에 내가 녹아드는 과정이 너무 거대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것 같다. 시간은 그저 상처 위에 얇은 막을 씌워줄 뿐, 그 아래의 깊이는 여전하다. 요즘은 혼자서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조금씩 편해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한다. 이게 정상적인 과정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는 습관에 젖어버린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내일 아침에도 무사히 눈을 뜨고, 조용히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오늘 하루는 충분한 게 아닐까 싶다.

댓글 1
  • 혼자 사는 삶의 고독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제가 며칠 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 묘하게 공감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