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실의 묘하게 차가운 공기
지난주 평일 저녁, 큰맘 먹고 강남역 근처에 있는 결혼정보회사에 다녀왔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가기 전날까지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냥 앱으로 만나는 거랑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고, 막상 상담실에 앉으면 등급 매겨지듯 점수나 매겨지는 거 아닐까 하는 막연한 거부감도 있었다. 예약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로비가 너무 조용해서 숨소리도 조심하게 되더라. 안내를 받아 들어간 상담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묘하게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상담해주시는 분은 꽤나 숙련된 태도로 나를 맞이해주셨는데, 그게 친절이라기보다는 일처리에 아주 능숙한 사람의 모습이라 더 묘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가격은 예상보다 높았다
상담이 중반쯤 넘어가니까 자연스럽게 비용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있었지만, 막상 구체적인 숫자를 들으니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대략 가입비가 수백만 원대에서 시작하는데, 이게 단순한 소개팅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성혼 사례비까지 생각하면 더 커지겠지만, 상담해주시는 분은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웃으셨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닌데, 그냥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나는 그냥 내 옆에 있을 사람을 찾고 싶을 뿐인데, 상담실 안에서는 이게 마치 엄청난 계약을 체결하는 비즈니스처럼 느껴지니까.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돈을 내고 내가 얻는 확신이 도대체 뭘까 싶었다.
쏟아지는 조건들 사이에서
상담 도중 내가 원하는 상대의 조건을 묻길래 몇 가지를 말씀드렸다. 그런데 상담해주시는 분이 내 조건들을 듣고는 조금 난색을 표하시더라. 내가 말한 조건들이 이 시장(?)에서는 꽤나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고 했다. 키나 직업, 그리고 살고 있는 지역까지. 사실 나는 그렇게 크게 무리한 조건을 건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분 입장에선 현실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나를 타일렀다. 마치 축구에서 전술을 짜듯, 나의 시장 가치를 냉정하게 분석해서 매칭 전략을 짜주겠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왠지 나라는 사람이 하나의 스펙 리스트가 된 기분이었다. 예전에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가볍게 ‘누굴 만나면 좋을까’ 이야기하던 때가 그립기도 했다.
며칠째 고민만 늘어간다
상담이 끝나고 나서 회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가입을 독촉하거나 지금 당장 결제하면 혜택을 더 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들이다. 사실 결정사도 결국 영업을 하는 곳이니 이해는 한다. 그런데 상담받기 전에는 그래도 ‘한번 해볼까?’ 싶었던 마음이, 지금은 오히려 ‘이게 정말 맞나?’ 하는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200만 원, 300만 원이라는 돈을 써서 내 인연을 시스템에 맡기는 게 과연 내가 원하는 결혼의 모습인가 싶다.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자니, 나이를 먹어가는 불안함도 있고 주변 지인들은 하나둘씩 짝을 찾아가는 게 보이기도 하니까. 그날 상담실에서 봤던 수많은 서류들과 차트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차라리 자연스러운 게 나은 걸까
결국 상담 이후로 가입 신청서는 쓰지 않고 있다. 그냥 결정사가 나쁜 건지, 아니면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앱에서 무작위로 만나는 소개팅이 더 인간적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만 상황을 바라보는 건가 싶기도 하다. 확실한 건, 어제 친구를 만나서 이 고민을 털어놨는데 친구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됐다고 했다. 우리 둘 다 여전히 비슷한 자리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 같다. 결혼이 참, 예전에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준비해야 할 게 아니라 포기해야 할 게 많은 건지도 모르지.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았다.
상담받고 나서 돈이 비싸다는 걸 깨달으니, 시스템에 의존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복잡해지네요.
수많은 고민들 들으면서 나도 좀 찔리네. 친구 얘기처럼 그냥 포기할까 봐 계속 조마조마하네요.
200만 원을 생각하면, 시스템에 의존하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가는 관계의 가치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