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카페에 앉아있던 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을 때

주말마다 카페에 앉아있던 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을 때

강남 어디쯤에서 마주친 낯선 상담실 분위기

결혼정보회사라는 곳을 처음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던 날, 사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그저 주변에서 하도 주변머리 없이 지낸다는 핀잔을 듣다 보니, ‘그래, 돈이라도 쓰면 뭐가 좀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압구정 근처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곳으로 상담 예약을 잡았다. 입구부터 너무 화려해서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는데, 30대 중반을 넘어가니 이런 망설임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더라. 상담실에 앉으니 상담 매니저님이 내 연봉부터 집안 배경까지 차트처럼 훑기 시작했다. 보통 소개팅 사이트나 앱에서 만날 때와는 온도가 완전히 달랐다. ‘이 사람은 내 매력을 보는 게 아니라 조건을 스캔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결정사비용이 최소 300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 단위까지 오가는 걸 듣고 나니, 이게 결혼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비싼 멤버십에 가입해서 서류 심사를 받으러 온 건지 분간이 잘 안 되더라.

주말 오후 카페에서의 씁쓸한 시간들

결정사를 통하지 않고도 사람을 만나보겠다고 꽤 오랫동안 노력했다. 주말이면 괜히 성수동이나 강남역 근처의 예쁜 카페를 찾아다녔다. 요즘은 카페 ‘포레스트포레스트’ 같은 곳처럼 음악과 일상을 공유하는 감성적인 공간이 많다. 려욱이나 이민혁 같은 연예인들이 SNS에 올리는 그런 여유로운 사진들처럼, 나도 책 한 권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면 누가 말을 걸어줄까 싶어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카페는 다들 각자의 일행과 대화하느라 바빴고, 나처럼 혼자 앉아 커피 한 잔을 두 시간 동안 마시며 사람 구경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렇게 낭비한 주말이 대체 몇 번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결정사 상담이라도 한 번 더 다녀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 때면 참 씁쓸하다. 혼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세 잔째 마시다 퇴근하는 기분이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이가 찬다는 것과 선택지의 좁아짐

남자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왜 있는지 실감하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그냥 ‘내 마음 맞는 사람 만나면 되지’ 싶었는데, 이제는 만남의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지인들의 소개팅도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소개팅 사이트를 기웃거려 봐도 프로필 사진 뒤에 숨겨진 실체를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항상 따라다닌다. 한 번은 꽤 괜찮은 사람인가 싶어 만났는데, 대화 주제가 서로의 가치관이 아니라 연봉과 자산 규모로 빠르게 흘러가는 걸 보며 큰 피로감을 느꼈다. 50대 재혼 상담 사례를 기사에서 우연히 봤는데, 그분들도 결국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라. 나이가 몇이든 결국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목표일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등급이니 조건이니 하는 것들에 갇혀서 쳇바퀴를 도는 걸까.

구현모의 재즈곡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다

얼마 전 구현모가 재즈 싱글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it’s raining’이라는 곡을 들으면서 퇴근하는데, 비 오는 창밖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정사에서 매칭해준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이런 감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조건으로 만나면 처음부터 서로의 결함을 찾느라 바쁠 텐데, 내가 과연 그 시스템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자신이 없다. 상담 매니저는 등급이 높으면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괜찮은 사람’의 기준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상담료를 내고 서류를 제출하는 그 과정 자체가, 마치 물건을 진열대에 올리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하다.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가끔은 50대 재혼을 고민하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말은 사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에 가깝다. 그렇다고 결혼정보회사에 내 인생을 맡기고 싶지는 않다. 지난 주말에도 결국 카페에 앉아 핸드폰으로 결정사 가입 후기를 검색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가입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환상을 버리지 못해 카페를 전전하는 건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결론을 내리고 싶어서 시작한 고민인데, 쓰다 보니 오히려 더 엉망으로 꼬여버린 것 같다. 내일은 또 어디 카페에 가서 누구를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그냥 내일 당장 결제 버튼을 누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댓글 1
  • 연봉과 자산 얘기부터 시작하다니, 정말 공감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