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체 상담을 받고 나서 왠지 모르게 허탈했던 오후

결혼정보업체 상담을 받고 나서 왠지 모르게 허탈했던 오후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던 날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냥 ‘나도 언젠가는 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문득 나이가 꽤나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다들 결혼이다 뭐다 해서 주변이 소란스러운데 나만 멈춰있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충동적으로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 결혼정보업체 몇 군데를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결정사 순위 같은 건 어디서 누가 광고를 뿌렸는지 알 수 없는 정보가 태반이라 그냥 대충 대형 업체 몇 곳에 전화를 걸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한 사무실에 상담 예약을 잡았는데, 막상 문 앞까지 가니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담실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차분한 조명이 은은하게 켜져 있었다.

상담실에서 들었던 숫자들

상담해주시는 분은 아주 능숙하게 내 정보를 받아 적었다. 직업, 연봉, 부모님 환경, 심지어는 내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까지. 마치 서류를 검토하듯 나라는 사람을 평가받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불쾌할 뻔했는데, 그분은 너무나 사무적으로 웃고 있었다.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이면 보통 이 정도 조건이 평균이라며 표를 보여주는데, 그 표가 내 가치를 결정하는 것 같아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가입비는 대략 300에서 500만 원 정도를 이야기하더라. 성혼비는 별도라고 했다. 결혼을 하는데 이런 큰 금액을 내고 누군가를 ‘매칭’받는다는 시스템 자체가 나에게는 좀 생경하게 다가왔다. 아는 분 중에 여기서 결혼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나는 과연 이 시스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소개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긴장감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바람이 꽤 불었다. 핸드폰을 켜보니 지인이 소개팅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방금 상담받고 온 그 체계적인 시스템보다, 친구가 대충 해주는 소개팅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결정사에서 말하는 ‘스펙’ 중심의 만남은 어쩐지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나중에는 지칠 것만 같았다. 예전에 한 번은 이런 자리를 통해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첫 만남부터 서로의 조건을 재느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 허무함이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만남을 구걸하는 기분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떡공장에서 일하던 누군가의 기사

집에 와서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예전에 레이싱모델로 유명했던 누군가가 이혼 후 떡공장에서 알바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결혼이라는 게 참, 어떤 조건에 맞춰서 철저하게 계산해서 시작해도 결국 사람 일은 모르는 거구나 싶었다. 내가 결정사에서 점수를 매기며 누군가를 찾으려 애쓰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주위 사람들은 빨리 결혼정보업체라도 가입해서 사람을 만나보라고 성화지만, 막상 그 차가운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던 기억이 자꾸 떠올라 선뜻 결제를 못 하겠다. 가격적인 부분도 부담이지만,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는 마음

결국 상담만 받고 돌아온 그날 이후로 한 달이 지났다. 업체에서는 가끔 카톡으로 이벤트가 있다는 연락이 오는데, 딱히 답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그냥 퇴근하고 혼자 맥주 한 잔 마시거나 넷플릭스 보는 게 더 편하다.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둘러서 무언가를 증명하듯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다. 아니, 사실은 그냥 겁이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 결혼이 실제로는 더 복잡하고 힘든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조급하게 굴었던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마 당분간은 그냥 이렇게 혼자 지내는 게 더 익숙할 것 같다.